Come Taste the Band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Come Taste the Band》는 1975년 딥 퍼플이 기타리스트 토미 볼린을 영입하여 발매한 앨범이다. 앨범은 펑크와 블루스의 영향을 받아 이전 딥 퍼플의 스타일과는 다른 음악적 특징을 보였으며, 상업적으로는 이전 앨범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앨범 발매 후 딥 퍼플은 투어를 진행했으나, 멤버들의 약물 문제와 갈등으로 인해 투어가 실패로 끝나고 1976년에 해체했다. 발매 당시에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에는 재평가를 받으며 볼린의 기여가 재조명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딥 퍼플의 음반 - Abandon (음반)
1998년에 발매된 딥 퍼플의 16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Abandon은 1990년대 후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담아 "애니 풀 노 댓", "올모스트 휴먼" 등 12곡이 수록되었고, 발매 후 월드 투어와 라이브 앨범, DVD로도 제작되었다. - 딥 퍼플의 음반 - Purpendicular
Purpendicular는 1996년에 발매된 딥 퍼플의 열다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으로, 실험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보여주며 여러 국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 마틴 버치가 프로듀싱한 음반 - Live After Death
아이언 메이든의 라이브 앨범이자 콘서트 비디오인 《Live After Death》는 1984년 Powerslave 투어의 롱비치 아레나 공연 실황을 담아 1985년에 발매되었으며, 윈스턴 처칠 연설 인트로와 데릭 릭스의 앨범 커버가 특징적인 밴드의 대표적인 라이브 앨범으로 평가받는다. - 마틴 버치가 프로듀싱한 음반 - Long Live Rock 'n' Roll
Long Live Rock 'n' Roll은 리치 블랙모어, 로니 제임스 디오, 코지 파웰이 참여하여 1978년에 발표한 영국의 하드 록 밴드 레인보우의 세 번째 정규 음반으로, 영국에서 실버 인증을 받고 "Long Live Rock 'n' Roll", "L.A. Connection" 등의 싱글을 발매했다. - 1975년 음반 - Breakaway (아트 가펑클의 음반)
아트 가펑클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인 Breakaway는 1975년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발매되었으며 팝, 록, 포크,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를 담고 댄 타나 레스토랑에서 촬영된 앨범 커버가 특징이다. - 1975년 음반 - Physical Graffiti
《Physical Graffiti》는 1975년 발매된 레드 제플린의 더블 앨범으로, 상업적, 비평적으로 성공했으며, 1973년 녹음된 곡들과 이전 앨범에서 제외되었던 곡들을 포함하여 15곡을 수록하고 있으며, 롤링 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Come Taste the Band - [음악]에 관한 문서 | |
---|---|
음반 정보 | |
![]() | |
음반 종류 | 스튜디오 앨범 |
아티스트 | 딥 퍼플 |
발매일 | 1975년 11월 7일 |
녹음일 | 1975년 8월 3일 – 9월 1일 |
스튜디오 | 뮤직랜드 (뮌헨) |
장르 | 하드 록 펑크 록 |
길이 | 37분 16초 |
레이블 | 퍼플 |
프로듀서 | 마틴 버치 딥 퍼플 |
이전 음반 | 스톰브링거 |
다음 음반 | 퍼펙트 스트레인저스 |
싱글 | |
싱글 1 | Gettin' Tighter |
싱글 1 발매일 | 1976년 2월 (미국) |
싱글 2 | You Keep On Moving |
싱글 2 발매일 | 1976년 3월 12일 (영국) |
데이비드 커버데일 연대기 | |
이전 음반 | 스톰브링거 |
현재 음반 | 컴 테이스트 더 밴드 |
다음 음반 | 화이트 스네이크 |
평가 | |
BBC 뮤직 | (혼합적) |
블로그크리틱스 | (평균적) |
롤링 스톤 | (호의적) |
차트 성적 | |
일본 최고 순위 | 14위 |
영국 최고 순위 | 19위 |
미국 최고 순위 | 43위 |
2. 역사
1974년 11월, 전작 《폭풍의 사나이》가 발표된 후, 리치 블랙모어는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가 딥 퍼플의 음악에 도입한 소울과 펑크 음악 요소 증가에 불만을 품고 1975년 4월 7일 파리 공연을 마지막으로 탈퇴했다. 많은 팬들과 언론은 음악적 주도권을 쥐고 있던 블랙모어가 없는 딥 퍼플은 상상할 수 없다며 해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8]
커버데일은 존 로드에게 딥 퍼플을 계속 유지할 것을 요청하며 토미 볼린을 후임 기타리스트로 추천했다.[109] 볼린은 소울, 펑크, 재즈의 영향을 받아, 하드 록을 지향하면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더욱 강조된 음악을 추구했다.[110] 이는 블랙모어 시절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멤버에게 창조의 자유가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2. 1. 밴드의 위기와 재편
1975년 리치 블랙모어가 딥 퍼플을 떠났을 때, 1973년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가 탈퇴했을 때처럼 밴드의 존속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었다.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존 로드에게 밴드를 계속 함께 유지해 달라고 부탁했으며, 빌리 코햄의 솔로 음반 《Spectrum》에서 토미 볼린의 연주를 듣고 그를 기타리스트로 영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145]1970년대 중반, 딥 퍼플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록 밴드 중 하나였다.[5] 그러나 멤버 구성과 분위기는 자주 바뀌었다.[6] 음악적으로는 헤비 록에서 블루스, 펑크, 소울로 접근 방식이 변화했다.[7] 리치 블랙모어는 후자의 두 가지 음악적 요소를 통합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고, 1975년에 그룹을 떠나 자신의 밴드 레인보우를 결성했다. 이로 인해 딥 퍼플이 무기한 해체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블랙모어가 그에게 밴드에 합류할 것을 제안했지만, 그의 참여 시도는 매우 불편하고 부적절했다고 말했다.[8][9]
원년 멤버 존 로드 (오르간)와 이안 페이스 (드럼)는 그룹을 떠나려 했지만,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 (베이스)는 그들을 설득하여 남아 새 기타리스트 오디션을 보게 했다. 그들은 몇 년 동안의 성공을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꼈다. 매니지먼트는 밴드의 지속 결정에 매우 희망적이었다. 커버데일은 이름을 "Purple" 또는 "Good Company"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반대했다. 커버데일과 로드에 따르면, 밴드가 계속하기로 한 결정의 배후에는 주로 로열티 문제가 있었다.[10]
기타리스트를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커버데일이 밴드에 추천한 사람은 제프 벡, 로리 갤러거, 토미 볼린이었다. 오디션은 할리우드의 로버트 사이먼의 파이럿 스튜디오에서 열렸다.[11] 험블 파이의 클렘 클렘슨도 밴드 오디션을 봤지만, 블랙모어의 대체자가 되지는 못했다. 빌리 코밤의 스펙트럼에서의 연주가 밴드 멤버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볼린은 오디션에 참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커버데일은 오디션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퓨전 재즈만 연주했던 볼린은 밴드의 음반 목록이나 밴드의 이미지에 대해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션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볼린은 즉시 합류하라는 요청을 받았다.[14] 볼린은 밴드의 연주 실력을 존경했지만, 밴드에 합류하기로 한 결정에는 자신의 솔로 경력을 홍보하기 위한 가시성과 돈을 얻고 싶었던 욕망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15] 수 주 동안 소문이 돌던 끝에, 밴드는 1975년 6월 블랙모어의 탈퇴와 볼린의 합류를 발표했다.[16]
새로운 라인업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고, 밴드에게 동기를 부여했다.[17] 나머지 밴드 멤버들은 블랙모어의 논쟁적이고 까다로운 성격과 비교하여 쾌활하고 외향적인 볼린과 잘 지냈다.[18] 특히 볼린과 휴즈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19] 블랙모어는 볼린을 자신의 후계자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20]
딥 퍼플의 매니저들은 볼린의 개인적인 사업 일정에 맞춰 그의 활동 계획에 대해 우려했다. 게다가 볼린은 곧 발매될 솔로 앨범을 녹음하고 홍보해야 했다. 밴드는 볼린이 휴식 기간 동안 솔로 경력에 집중할 수 있도록 빡빡한 작업 속도에서 벗어나기로 합의했다.[21]
2. 2. 토미 볼린의 합류와 음악적 변화
1975년 리치 블랙모어가 딥 퍼플을 떠났을 때, 1973년 이언 길런과 로저 글로버가 탈퇴했을 때처럼 밴드의 존속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었다. 존 로드에게 밴드를 계속 함께 해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데이비드 커버데일이었고, 커버데일은 빌리 코햄의 솔로 음반 《Spectrum》에서 볼린의 연주를 듣고 토미 볼린을 영입하여 기타 자리를 채우게 한 주요 인물이었다.[145]1970년대 중반, 딥 퍼플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록 밴드 중 하나였다.[5] 하지만, 동시에 그룹 멤버 구성과 분위기는 자주 바뀌었다.[6] 음악적으로는 헤비 록에서 블루스, 펑크, 소울로 접근 방식이 전환되었다.[7]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는 후자의 두 가지 음악적 요소를 통합하는 것에 강하게 반대했고, 그 결과 1975년에 그룹을 떠나 자신의 밴드 레인보우를 결성했으며, 딥 퍼플이 무기한 해체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8]
원년 멤버 존 로드(오르간)와 이안 페이스(드럼)는 그룹을 떠나려 했지만,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글렌 휴즈(베이스)는 그들을 설득하여 남아 새 기타리스트 오디션을 보게 했으며, 몇 년 동안의 성공을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느꼈다.[10] 기타리스트를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커버데일이 밴드에 추천한 사람은 제프 벡, 로리 갤러거, 토미 볼린이었다. 험블 파이의 클렘 클렘슨도 밴드 오디션을 봤지만, 블랙모어의 대체자가 되지는 못했다.[11] 빌리 코밤의 스펙트럼에서의 연주가 밴드 멤버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볼린은 오디션에 참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12] 퓨전 재즈만 연주했던 볼린은 밴드의 음반 목록이나 밴드의 이미지에 대해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디션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볼린은 즉시 합류하라는 요청을 받았다.[14] 볼린은 밴드의 연주 실력을 존경했지만, 밴드에 합류하기로 한 결정에는 자신의 솔로 경력을 홍보하기 위한 가시성과 돈을 얻고 싶었던 욕망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15]
새로운 라인업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고, 밴드에게 동기를 부여했다.[17] 나머지 밴드 멤버들은 블랙모어의 논쟁적이고 까다로운 성격과 비교하여 쾌활하고 외향적인 볼린과 잘 지냈다.[18] 특히 볼린과 휴즈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19] 블랙모어는 볼린을 자신의 후계자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20]
본작의 내용은 3기 딥 퍼플이 제작한 전작 《폭풍의 사나이》와 전전작 《퍼플 레인》보다 상업적이다. 휴즈와 마찬가지로 소울과 펑크, 그리고 재즈의 영향을 받은[110] 볼린의 음악적 지향이 전면적으로 반영되어, 전통적인 하드 록을 지향하면서도 소울과 펑크의 요소가 더욱 강조된 작품이 되었다. 새로운 멤버에게 창조의 자유가 주어진 것은 블랙모어가 재직했을 당시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3. 앨범 제작 과정
1975년 8월, 딥 퍼플은 독일 뮌헨의 뮤직랜드 스튜디오에서 새 앨범 ''Come Taste the Band'' 녹음에 들어갔다. 마틴 버치가 프로듀싱을 맡았고, 이안 페이스가 믹싱에 참여했다.[22]
하지만, 멤버들의 약물 문제는 녹음 과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특히 토미 볼린은 헤로인과 아편유사제를 불규칙하게 사용했고, 글렌 휴즈는 코카인 중독에 빠져 있었다.[26] 로드 크루가 약물 사용을 막으려 했지만, 약물은 책 속에 숨겨져 밀반입되는 등 대부분 실패했다.[27] 결국 휴즈는 약물 재활을 위해 런던으로 보내졌고, 대중에게는 간염에 걸렸다고 알려졌다.[28]
3. 1. 작곡 및 녹음
토미 볼린이 딥 퍼플에 합류한 후, 1975년 8월 3일부터 9월 1일까지 독일 뮌헨의 뮤직랜드 스튜디오에서 ''Come Taste the Band''의 녹음이 진행되었다.[22] 앨범 수록곡 대부분은 녹음 시작 전에 이미 작곡되었으며, 주로 데이비드 커버데일과 볼린이 썼다. 볼린은 이전 밴드에서 가져온 자료를 활용했고, 그의 친구 제프 쿡과 함께 많은 곡을 작곡했다. 밴드 멤버들은 볼린에게 작곡의 자유를 주었고, 볼린은 이에 만족했다.[23]블랙모어와 달리 볼린은 이펙트 페달 등 여러 효과를 사용했고, 스튜디오의 기능을 적극 활용했다. 예를 들어, 앨범에서는 겹쳐진 기타 트랙이 자주 사용되었다. 키보디스트 존 로드는 "Love Child"와 자신이 모든 악기를 연주하는 "This Time Around"[24]의 솔로 부분을 제외하고는 앨범 대부분에서 배경에 머물렀다.[22]
녹음은 멤버들의 약물 남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볼린은 헤로인과 아편유사제를 불규칙하게 사용했고, 글렌 휴스는 코카인에 중독되어 있었다.[26] 로드 크루는 약물 사용을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휴즈는 약물 재활을 위해 런던으로 보내졌고,[27] 대중에게는 간염에 걸렸다고 알려졌다.[28]
휴즈는 부재로 인해 이전 앨범들보다 이 앨범에서 훨씬 적게 불렀다. 커버데일과의 공동 보컬은 ''Come Taste the Band''의 마지막 곡 "You Keep on Moving"에서만 들을 수 있다. 볼린은 커버데일과 함께 "Dealer"라는 곡에서도 노래한다.[24] 휴즈는 떠나기 전에 대부분의 베이스 트랙을 녹음했지만, "Comin' Home"에는 볼린이 베이스를 연주했다.[24]
''Come Taste the Band''의 오프닝 트랙인 "Comin' Home"은 딥 퍼플의 옛 스타일과 새로운 스타일을 결합했다. 이안 페이스의 드럼 인트로가 시작되며, 볼린의 이펙트를 활용한 연주는 이 곡에 새로운 면모를 더했다.[34] 이 곡은 뮌헨에서 작곡되었다.[113] 휴즈와 로드에 따르면, 본작의 수록곡 대부분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작곡되어 뮌헨에서 녹음되었다.
3. 2. 프로덕션과 믹싱
1975년 8월 3일부터 9월 1일까지 독일 뮌헨의 뮤직랜드 스튜디오에서 녹음이 진행되었다.[22] 앨범은 밴드와 협력하여 마틴 버치가 프로듀싱했으며, 이안 페이스는 버치와 함께 레코드를 믹싱했다.[22]블랙모어와 달리 볼린은 연주에 이펙트 페달 등 여러 효과를 사용했고, 블랙모어보다 스튜디오가 제공하는 기회를 훨씬 더 많이 활용했다. 예를 들어, 앨범에서는 겹쳐진 기타 트랙이 자주 사용되었다.[22]
녹음은 멤버들의 약물 남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볼린은 헤로인과 다른 아편유사제를 불규칙하게 사용했다. 휴즈는 오랫동안 코카인에 중독되어 있었다.[26] 로드 크루는 멤버들에게 공급된 약물을 숨기고 불법 약물 거래 상인을 폭행하여 약물 사용을 막으려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약물은 속을 파낸 책 안에 숨겨져 볼린과 휴즈에게 밀반입되었다. 휴즈는 난동꾼에게 맞은 후 약물 재활을 위해 런던으로 보내졌고,[27] 대중에게는 휴즈가 간 감염에 걸렸다고 알려졌다.[28] 이 때문에 휴즈는 이전 두 개의 딥 퍼플 앨범보다 이 앨범에서 훨씬 적게 불렀다.[24]
휴즈와 로드에 따르면, 본작 수록곡 대부분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작곡되어 뮌헨에서 녹음되었지만, '커밍 홈'은 뮌헨에서 작곡되었다. 휴즈는 코카인 중독과 간염 치료를 위해 녹음 완료 전에 잉글랜드로 돌아갔다. 그래서 '커밍 홈' 녹음과 앨범 재킷 촬영에 참여하지 못했다.[113]
2010년 10월 25일, 2-CD 디럭스 에디션 35주년 기념판이 발매되었다. 여기에는 리마스터링된 오리지널 앨범 외에 풀 앨범 리믹스와 1975년 판에서 제외된 두 곡의 미발표곡이 수록되었다.
3. 3. 약물 문제와 갈등
토미 볼린과 글렌 휴즈는 심각한 약물 문제를 겪었다. 볼린은 헤로인과 아편유사제를 불규칙하지만 자주 사용했고, 휴즈는 코카인에 중독되어 있었다.[26] 로드 크루가 약물 사용을 막으려 했지만, 약물은 책 속에 숨겨져 밀반입되는 등 대부분 실패했다.[27]이러한 약물 문제는 앨범 제작에 큰 영향을 미쳤다. 휴즈는 간염과 코카인 중독 치료를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가야 했고, "Comin' Home" 녹음과 앨범 재킷 촬영에 참여하지 못했다.[113] 그는 이전 두 앨범보다 이 앨범에서 훨씬 적게 노래를 불렀고, 데이비드 커버데일과의 공동 보컬은 "You Keep On Moving"에서만 들을 수 있다.[24] 볼린은 "Dealer"에서 커버데일과 함께 노래하는데, 이 곡의 가사는 커버데일이 휴즈의 중독을 막으려 설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34]
멤버들 간의 갈등도 있었다. 커버데일과 휴즈는 노래 파트 분담을 두고 갈등을 겪었다.[24] 녹음 후, 다른 멤버들은 휴즈가 밴드 활동을 계속하기 위한 조건으로 스스로를 돌볼 것을 요구했다.[24]
4. 앨범의 음악적 특징
Come Taste the Band영어는 딥 퍼플의 이전 작품들과는 달리 펑크와 블루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24][30] 미카 예르비넨은 이 앨범을 "완전히 개혁하려는 급진적이고 용감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Stormbringer'' 앨범이 흑인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에 비해, 이번 앨범은 전반적으로 록 스타일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31]
마크 IV 밴드 구성원들의 초기 연습 세션에서는 길고 자유로운 즉흥 연주가 많았지만, Come Taste the Band영어 앨범에서는 그러한 부분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24]
"Comin' Home"은 이언 페이스의 드럼 인트로로 시작하여 이전 딥 퍼플의 콘서트와 유사한 느낌을 주지만, 토미 볼린의 이펙트를 활용한 기타 연주가 새로운 면모를 더했다.[34] "Gettin' Tighter"는 글렌 휴즈가 부른 기타 중심의 경쾌한 곡으로, 이전 딥 퍼플의 어떤 곡보다 더 많은 펑크적 영향을 특징으로 한다.[34] "I Need Love"에서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주제인 섹스에 대해 노래하며, 여성 백업 싱어가 참여한다.[36][37]
4. 1. 장르와 스타일
''Come Taste the Band''는 딥 퍼플의 이전 작품들과 달리 강한 펑크와 블루스의 영향을 받았다.[24][30] 미카 예르비넨에 따르면, 이 앨범은 "완전히 개혁하려는 급진적이고 용감한... 시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밴드의 이전 앨범 ''Stormbringer''보다 록 스타일이 강했는데, ''Stormbringer''는 흑인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31]마크 IV의 첫 몇 주간의 연습 세션에서는 길고 자유로운 즉흥 연주를 했지만, ''Come Taste the Band''에는 그런 부분이 거의 없다.[24] 올뮤직에 따르면, 이 앨범의 장르는 아레나 록, 하드 록, 헤비 메탈로 분류된다. 롤링 스톤의 현대적 평가에 따르면, 이 앨범은 밴드의 이전 두 앨범의 펑크 스타일을 이어가면서도 밴드의 초기 시절 프로그레시브 록으로의 회귀를 열망하고 있다.[33]
''Come Taste the Band''의 오프닝 트랙인 "Comin' Home"은 딥 퍼플의 옛 스타일과 새로운 스타일을 결합한 곡이다. 페이스의 드럼 인트로로 시작하며, 이는 밴드의 이전 라인업 콘서트와 유사하게 사용되었다. 기타리스트 토미 볼린의 이펙트를 활용한 연주는 이 곡에 새로운 면모를 더했다. 이 곡은 역동적이고 솔직한 록을 보여준다.[34]
"Gettin' Tighter"는 휴즈가 부른 기타 중심의 경쾌한 곡으로, 이전 딥 퍼플의 어떤 곡보다 더 많은 펑크적 영향을 특징으로 한다.[34] 이 곡은 볼린이 만든 리프에서 시작되었으며, 볼린은 1974년에 이 기타 리프를 썼다.[35]
A면의 마지막 곡인 "I Need Love"에서 커버데일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주제인 섹스에 대해 노래한다.[36] 이 곡에는 여성 백업 싱어도 참여한다.[37]
4. 2. 주요 곡 분석
''Come Taste the Band''는 딥 퍼플의 이전 음반들과 비교했을 때 펑크와 블루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24][30] 앨범 전체적으로는 ''Stormbringer''보다 록 스타일이 강하다.[31]- '''"Comin' Home"''': 앨범의 첫 곡으로, 딥 퍼플의 이전 스타일과 새로운 스타일을 결합한 곡이다. 이언 페이스의 드럼 인트로로 시작하며, 토미 볼린의 이펙트를 활용한 기타 연주가 특징적이다.[34]
- '''"Lady Luck"''': "Comin' Home"과 비슷한 스타일의 곡으로, 제프 쿡이 작곡했다. 토미 볼린이 딥 퍼플에 합류할 때 가져온 곡으로,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가사를 썼다.[34]
- '''"Dealer"''': 가사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띠는 곡으로,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글렌 휴즈의 중독을 막기 위해 설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토미 볼린의 보컬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34]
- '''"I Need Love"''':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섹스를 주제로 노래하는 곡으로, 여성 백업 싱어가 참여했다.[36][37]
- '''"Drifter"''': 빠른 템포의 곡으로, 리치 블랙모어의 "Mistreated"를 연상시키는 리프가 특징이다.[40][38]
5. 앨범 발매와 반응
''Come Taste the Band''는 딥 퍼플의 작품 중에서도 평가가 낮은 앨범 중 하나였지만, UK 차트에서 19위, US 차트에서는 43위를 기록하는 등 판매량은 나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6만 장이 판매되어 1975년 11월 1일에 BPI에 의해 실버 디스크로 인증받았다.[117]
이 앨범은 여러 음악 평론가들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롤링 스톤은 토미 볼린의 기타 연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115] 이안 길런은 이 앨범을 진정한 딥 퍼플의 작품이 아니라고 평가했다.[119][120]
1976년 3월, 본작의 투어가 끝난 후 딥 퍼플은 해산했다.[118] 토미 볼린은 같은 해 12월에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 최근에는 그가 본작에서 수행한 역할의 중요성이 칭찬받으며 재평가를 받고 있다.
연도 | 차트 | 순위 |
---|---|---|
1975 | 노르웨이 레코드 차트 | 6 |
1975 | 뉴질랜드 차트 | 6 |
1975 | 네덜란드 앨범 차트[137] | 12 |
1975 | 스웨덴 앨범 차트 | 16 |
1975 | 영국 앨범 차트[138] | 19 |
1975 | 독일 앨범 차트 | 29 |
1976 | 빌보드 앨범 차트[139] | 43 |
2010년 10월 25일에는 리마스터링된 오리지널 앨범과 미발표곡 2곡을 수록한 2-CD 디럭스 에디션 35주년 기념판이 발매되었다.
5. 1. 발매와 홍보
이 앨범은 퍼플 레코드를 통해 1975년 11월 7일에 발매되었다.[46] 이 음반에서는 두 개의 싱글이 발매되었는데, 영국에서는 "You Keep On Moving", 미국에서는 "Gettin' Tighter"가 발매되었다. "You Keep On Moving"은 영국에서 앨범의 유일한 싱글로 발매되었으며, 많은 동시대 평론가들은 이 곡을 앨범 최고의 곡으로 평가했다.[41]딥 퍼플의 팬들은 주로 십대와 젊은 성인이었다.[38] 라디오 룩셈부르크와의 인터뷰에서 이안 페이스는 멤버들이 밴드의 기존 청중이 "You Keep On Moving"과 같은 곡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신 밴드는 새로운, 더 젊은 청중에게 다가가고 싶어했고, 당시 밴드의 첫 히트곡이 발매되었을 때 그들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35] 딥 퍼플의 음악 스타일은 이전에 변화를 겪은 적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밴드는 투어를 통해 앨범을 홍보했으며, 투어의 성공은 다양한 라인업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반면에, ''Come Taste the Band''의 투어는 처참하게 실패했다.[47]
상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Come Taste the Band''의 판매량은 중간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전 앨범들에 비하면 좋지 않았다. 어떤 국가에서도 정상을 차지하지 못했다. 영국에서는 앨범이 19위에 올랐지만, 발매 후 4주 동안 그 순위를 유지했다.[48][49] 미국에서는 1976년 두 번째 주에 43위로 정점을 찍었고, 14주 동안 차트에 머물렀다.[50] 이 앨범이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곳은 뉴질랜드와 노르웨이로, 6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고국에서 실버 인증을 받았으며, 공식 영국 발매 전인 11월 초에 BPI에 의해 6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51] 이 앨범은 1970년대 딥 퍼플의 스튜디오 앨범 디스코그래피에서, 특히 현재까지 어떤 인증도 받지 못한 미국에서 상업적으로 실망스러운 작품으로 여겨졌다.
본작은 딥 퍼플의 작품 중에서도 평가가 낮은 앨범 중 하나였지만, UK 차트에서 19위, US 차트에서는 43위를 기록한 것처럼 판매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6만 장이 판매되어 BPI에 의해 1975년 11월 1일에 실버 디스크로 인증받았다[117]。
연도 | 차트 | 순위 |
---|---|---|
1975 | 노르웨이 레코드 차트 | 6 |
1975 | 뉴질랜드 차트 | 6 |
1975 | 네덜란드 앨범 차트[137] | 12 |
1975 | 스웨덴 앨범 차트 | 16 |
1975 | 영국 앨범 차트[138] | 19 |
1975 | 독일 앨범 차트 | 29 |
1976 | 빌보드 앨범 차트[139] | 43 |
5. 2. 상업적 성과
''Come Taste the Band''는 상업적으로 중간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전 딥 퍼플 앨범들에 비해서는 판매량이 좋지 않았다. 어떤 국가에서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영국에서는 앨범이 19위에 올랐고, 발매 후 4주 동안 그 순위를 유지했다.[48][49] 미국에서는 1976년 두 번째 주에 43위로 정점을 찍었고, 14주 동안 차트에 머물렀다.[50] 앨범이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한 곳은 뉴질랜드와 노르웨이로, 6위에 올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영국에서 BPI에 의해 6만 장 이상 판매되어 실버 인증을 받았다.[51] 이 앨범은 1970년대 딥 퍼플의 스튜디오 앨범 중 상업적으로 실망스러운 작품으로 여겨졌는데, 특히 미국에서는 현재까지 어떤 인증도 받지 못했다.
딥 퍼플의 팬들은 주로 십 대와 젊은 성인이었다.[38] 라디오 룩셈부르크와의 인터뷰에서 이안 페이스는 멤버들이 밴드의 기존 청중이 "You Keep On Moving"과 같은 곡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신 밴드는 새로운, 더 젊은 청중에게 다가가고 싶어했고, 당시 밴드의 첫 히트곡이 발매되었을 때 그들은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35]
본작은 딥 퍼플의 작품 중에서도 평가가 낮은 앨범 중 하나였지만, UK 차트에서 19위, US 차트에서는 43위를 기록한 것처럼 판매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6만 장이 판매되어 BPI에 의해 1975년 11월 1일에 실버 디스크로 인증받았다.[117]
연도 | 차트 | 순위 |
---|---|---|
1975 | 노르웨이 레코드 차트 | 6 |
1975 | 뉴질랜드 차트 | 6 |
1975 | 네덜란드 앨범 차트[137] | 12 |
1975 | 스웨덴 앨범 차트 | 16 |
1975 | 영국 앨범 차트[138] | 19 |
1975 | 독일 앨범 차트 | 29 |
1976 | 빌보드 앨범 차트[139] | 43 |
5. 3. 비평적 평가
''Come Taste the Band''는 발매 당시와 그 이후 여러 평가를 받았다. 여러 음악 평론가들은 이 앨범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놓았는데,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평가 | 내용 |
---|---|
긍정적 평가 | |
부정적 평가 | |
기타 평가 |
''Come Taste the Band''는 UK 차트에서 19위, US 차트에서는 43위를 기록했다.[117] 영국에서는 6만 장이 판매되어 1975년 11월 1일에 BPI에 의해 실버 디스크로 인증받았다.[117]
6. 투어와 밴드 해체
''Come Taste the Band'' 발매 이후, 딥 퍼플은 1975년 11월부터 1976년 3월까지 월드 투어를 진행했지만, 여러 문제로 인해 실패로 끝났다.
투어는 1975년 11월 8일 호놀룰루 공연을 시작으로, 뉴질랜드, 호주, 인도네시아, 일본, 미국, 영국 등지에서 진행되었다.[123] 12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공연에서는 당초 1만 명 규모의 콘서트로 계약했지만, 실제로는 1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나얀 메인 스타디움에서 이틀 동안 공연하게 되었다.[125] 첫날 공연은 인도네시아 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진행되었고, 공연 도중 로디 패시 콜린스가 의문의 추락사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126] 글렌 휴즈를 포함한 4명이 체포되었지만, 다음 날 강제로 공연에 참여해야 했다.[127]
일본 공연에서도 토미 볼린은 자카르타에서 손가락 부상을 입고, 프로모터에게 받은 진통제(실제로는 헤로인)를 복용한 후 왼팔을 아래로 한 채 잠들어 기타를 제대로 연주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129] 결국 1975년 12월 15일 일본 무도관 공연은 존 로드가 오르간으로 기타 파트를 연주하는 등 어려움 속에 진행되었고, 이 공연은 훗날 ''일본에서의 마지막 콘서트''라는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되었다.[128]
1976년 미국 투어와 영국 투어가 이어졌지만, 볼린과 휴즈의 약물 사용, 멤버 간의 갈등, ''Come Taste the Band''의 저조한 상업적 성과 등으로 인해 밴드 분위기는 악화되었다.[68] 결국 1976년 3월 15일 리버풀 엠파이어 극장에서의 마지막 공연 후, 로드와 이안 페이스는 딥 퍼플의 해체를 결정했다.[134]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탈퇴 의사를 밝혔지만, 딥 퍼플은 이미 해체되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71]
1976년 7월, 딥 퍼플의 해체가 공식 발표되었다. 매니저 롭 쿡시는 "밴드는 딥 퍼플로 다시 함께 녹음하거나 공연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발표했다.[72] 딥 퍼플의 해체는 1984년 'Mark II' 라인업이 재결성될 때까지 8년간 지속되었다.[79]
6. 1. 투어의 시작과 문제점
딥 퍼플 멤버들 간의 갈등은 투어 시작 전부터 나타났다. 예술적 자유를 누리던 볼린은 리치 블랙모어 시대의 곡들을 전임자의 스타일로 연주하라는 요청에 불만을 가졌다.[19] 게다가 볼린이 블랙모어 아내의 불륜에 대해 법정에서 증언해야 했던 일은 이러한 불만을 더욱 증폭시켰다.[53] 투어가 시작되자 볼린이 블랙모어의 곡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54] 밴드는 투어 중 새 앨범의 모든 곡을 연주했는데, 볼린과 존 로드는 이전과는 달리 실제 곡과 별개의 솔로 넘버로 연주되는 즉흥적인 긴 기타와 키보드 솔로를 연주했다.[55] 또한 밴드는 볼린의 ''티저'' 앨범 수록곡 "Wild Dogs", "Marching Powder", "Homeward Strut"을 연주했고, 볼린은 자신의 솔로곡을 직접 불렀다.[56]투어의 문제는 멤버들의 약물 문제로 인해 더욱 심각해졌다. 재활 치료를 받던 글렌 휴즈는 코카인 사용을 줄였지만, 디아제팜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는 금단 증상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약물이었다.[57] 볼린은 대량의 헤로인을 사용했고, 이는 투어가 시작된 후에야 다른 멤버들에게 알려졌다.[58] 그러나 골드마인(Goldmine) 잡지에서 밴드와 가까운 한 사람은 "문제는 토미가 마약을 좋아한다는 것보다는 다른 밴드 멤버들이 거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자기만의 세상에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라고 언급했다.[59] 밴드 멤버들의 성적 문제도 갈등을 일으켰는데, 볼린의 여자친구는 휴즈와, 휴즈의 여자친구는 로드와 불륜 관계를 맺었다.[60]
매니저들은 새로운 라인업이 경험을 쌓고 유럽과 미국에서의 실패 소식을 듣지 않도록 투어를 극동에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61] 첫 번째 콘서트는 하와이에서 열렸고, 이후 밴드는 뉴질랜드와 호주로 이동했다. 콘서트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특히 뉴질랜드에서는 기록적인 관객을 모았다. 현지 텔레비전을 위해 밴드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촬영되었다.[62]
1975년 12월, 딥 퍼플은 인도네시아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다. 밴드는 약 7,000명에서 10,000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할 것이라고 들었지만, 실제 공연장은 1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었다. 밴드는 작은 콘서트 한 번에 대한 보상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틀 밤 공연을 해야 했다. 밴드는 인도네시아 콘서트에 총 11000USD (4950GBP, 2023년 기준 약 36650GBP)를 받았지만, 실제 흥행 수익 분담금은 약 750000USD (338000GBP, 2023년 기준 약 2500000GBP)로 추산되었으며, 1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참석했다. 딥 퍼플 투어 매니저 롭 쿡시는 크리스 찰스워스에게 1983년 저서 ''딥 퍼플: 일러스트레이티드 바이오그래피(Deep Purple: The Illustrated Biography)''에서 "그것은 함정이었다... 호주에서 일본으로 가는 길에 우리만의 비행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의 여분의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방법처럼 보였다."라고 말했다.[63] 기관총과 도베르만을 갖춘 6,000명의 경찰관이 질서 유지를 위해 동원되었다. 첫 번째 콘서트는 혼란스러웠고 20분 만에 밴드는 연주를 중단했다. 결국 후자는 거대한 폭동으로 번졌다. 콘서트 사이의 밤에 밴드의 경호원 중 한 명이 엘리베이터 샤프트에 떨어졌다. 그는 살아남았지만 그 직후 사망했다. 휴즈, 쿡시, 그리고 스태프 멤버 중 한 명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다음 날 아침, 군복을 입은 판사는 그 사건을 사고로 판결하고 피고인들에게 2000USD (900GBP)를 지불하고 여권을 되찾도록 명령했다. 로드와 휴즈는 나중에 밴드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위한 살인이라고 추측했다. 밴드가 인도네시아를 떠나려 하자 가짜 공항 경비를 이유로 10000USD (4500GBP)를 추가로 요구했다.[64][63][65]
인도네시아 투어 중 볼린은 질 낮은 헤로인에 손을 찔려 손이 마비되었고 제대로 연주할 수 없었다. 밴드의 다른 멤버들에게 그는 손으로 잠을 자서 신경 쇠약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12월 말 일본에서도 계속되었고, 밴드는 4번의 콘서트를 열었으며, 결국 1975년 12월 15일 일본 무도관에서 녹음된 라이브 앨범 ''일본에서의 마지막 콘서트''를 1977년 3월 16일에 발매했다. 이 라이브 앨범은 일본에서만 성공을 거두었고, 휴즈는 볼린의 헤로인 중독을 그의 형편없는 연주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끔찍한 음반"이라고 불렀다.[66] 이 시점에서 볼린은 오픈 튜닝을 사용해야 했고 존 로드는 오르간으로 기타 파트를 연주했다.[67]
6. 2. 밴드 해체 과정
딥 퍼플 멤버들 간의 갈등은 투어 시작 전부터 있었다. 기타리스트 토미 볼린은 리치 블랙모어 시절의 곡을 원곡의 스타일대로 연주하라는 요청에 불만을 가졌다.[19] 게다가 볼린은 블랙모어 아내의 불륜에 대해 법정에서 증언해야 했다.[53] 투어가 시작되자 볼린이 블랙모어의 곡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54] 밴드는 투어 중 새 앨범의 모든 곡을 연주했고, 볼린과 존 로드는 이전과는 달리 즉흥적인 긴 기타와 키보드 솔로를 연주했다.[55] 또한 밴드는 볼린의 솔로 앨범 ''티저''의 수록곡 "Wild Dogs", "Marching Powder", "Homeward Strut"을 연주했고, 볼린은 자신의 솔로곡을 직접 불렀다.[56]투어의 문제는 멤버들의 약물 문제로 인해 심화되었다. 글렌 휴즈는 재활 치료 동안 코카인 사용을 줄였지만, 디아제팜에 의존하게 되었다.[57] 토미 볼린은 대량의 헤로인을 사용했고, 이는 투어가 시작된 후에야 다른 멤버들에게 알려졌다.[58] 그러나 골드마인(Goldmine) 잡지에서 밴드와 가까운 한 사람은 "문제는 토미가 마약을 좋아한다는 것보다는 다른 밴드 멤버들이 거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라고 언급했다.[59] 밴드 멤버들의 성적인 문제 또한 갈등을 일으켰다. 볼린의 여자친구는 휴즈와, 휴즈의 여자친구는 로드와 불륜 관계였다.[60]
1975년 12월, 딥 퍼플은 인도네시아에서 공연을 했다. 밴드는 약 7,000명에서 10,000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할 것이라고 들었지만, 실제 공연장은 1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었다. 밴드는 작은 콘서트 한 번에 대한 보상만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틀 밤 공연을 해야 했다. 밴드는 인도네시아 콘서트에 총 11000USD (4950GBP, 2023년 기준 약 36650GBP)를 받았지만, 실제 흥행 수익 분담금은 약 750000USD (338000GBP, 2023년 기준 약 2500000GBP)로 추산되었으며, 1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참석했다.[63] 첫 번째 콘서트는 혼란스러웠고 20분 만에 밴드는 연주를 중단했다. 결국 후자는 거대한 폭동으로 번졌다. 콘서트 사이의 밤에 밴드의 경호원 중 한 명이 엘리베이터 샤프트에 떨어져 사망했다. 휴즈, 쿡시, 그리고 스태프 멤버 중 한 명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다음 날 아침, 군복을 입은 판사는 그 사건을 사고로 판결하고 피고인들에게 2000USD (900GBP)를 지불하고 여권을 되찾도록 명령했다. 로드와 휴즈는 나중에 밴드로부터 돈을 뜯어내기 위한 살인이었다고 추측했다. 밴드가 인도네시아를 떠나려 하자 가짜 공항 경비를 이유로 10000USD (4500GBP)를 추가로 요구했다.[64][63][65]
인도네시아 투어 중 볼린은 질 낮은 헤로인에 손을 찔려 손이 마비되었고 제대로 연주할 수 없었다. 밴드의 다른 멤버들에게 그는 손으로 잠을 자서 신경 쇠약을 겪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12월 말 일본에서도 계속되었고, 밴드는 4번의 콘서트를 열었으며, 결국 1975년 12월 15일 일본 무도관에서 녹음된 라이브 앨범 ''일본에서의 마지막 콘서트''를 1977년 3월 16일에 발매했다. 이 라이브 앨범은 일본에서만 성공을 거두었고, 휴즈는 볼린의 헤로인 중독을 그의 형편없는 연주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끔찍한 음반"이라고 불렀다.[66] 이 시점에서 볼린은 오픈 튜닝을 사용해야 했고 존 로드는 오르간으로 기타 파트를 연주했다.[67]
1976년 초 딥 퍼플은 미국 투어에 나섰다. 볼린은 고향에서 연주했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쇼에 대해 더 자신감을 보였고, 계획대로 잘 진행되기를 바랐다. 2개월이 채 안 되는 투어는 총 30번의 쇼를 포함했으며, 투어가 끝났을 때 밴드는 심하게 과로했다. 원래 계획은 휴식을 취하고 여름에만 공연을 재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매니저들은 3월 초에 밴드를 위해 영국에서 5번의 콘서트 투어를 마련했다.[68] 데이비드 커버데일, 로드, 이안 페이스는 6일의 휴가를 받아 휴식을 취했고, 볼린과 휴즈는 내내 파티를 했다.[69]
영국 투어는 논란이 많았고 콘서트 리뷰는 매우 부정적이었다.[69] 볼린과 휴즈의 약물 사용으로 인해 콘서트 수준이 크게 달랐고, 볼린의 공연은 관객들이 블랙모어의 복귀를 외치는 소리에 의해 더욱 훼손되었다.[68] 밴드의 분위기는 또한 ''Come Taste the Band''의 저조한 성공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66] 커버데일은 볼린과 휴즈의 보컬 파트뿐만 아니라 가수로 할 일이 거의 없었던 긴 기악 파트에 좌절했다. 또한 멤버들은 밴드의 음악적 방향에 대해 의견이 달랐다. 커버데일, 로드, 페이스는 록을 고수하고 싶어했고, 볼린과 휴즈는 펑크에 더 관심이 있었다.[68]
투어의 마지막 콘서트는 1976년 3월 15일 리버풀 엠파이어 극장에서 열렸으며, 휴즈는 가짜 미국식 억양으로 청중에게 밴드의 형편없는 공연에 대해 사과했다.[70] 콘서트 후, 로드와 페이스는 밴드의 활동을 중단하고 투어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얼마 후, 커버데일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떠나겠다고 발표했고, 로드와 페이스는 딥 퍼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71]
이 앨범 투어가 끝난 후, 1976년 7월까지 밴드의 해체를 공식 발표하지 않았고, 당시 매니저 롭 쿡시가 "밴드는 딥 퍼플로 다시 함께 녹음하거나 공연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발표했다.[72] 마약 문제와 함께, 혹독한 작업 일정과 매니저들이 멤버들에게 휴가를 조직하는 것을 꺼린 것이 그룹 해체의 원인으로 작용했다.[73]
해체 후, 볼린은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여 피터 프램튼과 제프 벡을 지원하는 투어를 하고, 두 번째 솔로 앨범인 ''Private Eyes''를 녹음했다.[75] 그러나 볼린은 1976년 12월 4일 헤로인, 알코올, 코카인, 바르비투르산염에 의한 복합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76][77]
데이비드 커버데일은 솔로 경력을 시작하여 두 개의 솔로 앨범 ''White Snake''와 ''Northwinds''를 발표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밴드 화이트스네이크를 결성했다. 딥 퍼플 'Mark I-IV' 라인업의 멤버인 로드와 페이스는 초기 화이트스네이크 앨범 시대에 커버데일의 그룹에 합류했다.
딥 퍼플의 해체는 'Mark II' 라인업이 재결성되어 1984년 컴백 앨범 ''Perfect Strangers''를 제작하기까지 8년 동안 지속되었다.[79][80]
7. 앨범의 재평가와 영향
Come Taste the Band영어는 발매 당시에는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재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토미 볼린의 기타 연주와 앨범의 독창적인 음악 스타일이 인정받고 있다.[89][90]
이안 길런은 이 앨범을 진정한 딥 퍼플 앨범으로 보지 않는다고 언급했지만,[91] 리치 블랙모어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볼린의 기타 실력을 칭찬했다.[92] 존 로드 역시 "놀라울 정도로 좋은 앨범"이지만, "딥 퍼플 앨범 같지 않다"는 점을 인정했다.[93]
롤링 스톤 등 여러 평론 매체들은 토미 볼린이 밴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으며, 그의 다재다능한 기타 연주가 앨범의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이끌었다고 평가한다.[95]
7. 1. 재평가 과정
최근 몇 년 동안, ''Come Taste the Band''는 토미 볼린의 앨범 기여에 힘입어, 롤링 스톤과 BBC 뮤직을 포함한 언론과 주류 매체로부터 광범위한 찬사를 받으며 "그 자체의 가치"로 재평가받았다.[89][90]이안 길런(2년 조금 넘게 밴드를 떠남)은 이 앨범을 진정한 딥 퍼플 앨범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91] 리치 블랙모어는 이 앨범에 대한 질문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볼린을 기타리스트로서 칭찬했다.[92] 존 로드는 몇 년 후 인터뷰에서 이 앨범의 퀄리티를 칭찬하며, "지금 들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좋은 앨범"이라고 말하는 한편, "가장 안 좋은 점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딥 퍼플 앨범 같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인정했다.[93]
데이브 톰슨은 "열광적인 평을 받지 못했고, 약한 곡도 없었으며, 나쁜 앨범도 아니었지만... 딥 퍼플처럼 들리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38] 그러나 전문 비평가들의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Fanfare''의 평론에서는 ''Come Taste the Band''를 ''머신 헤드''와 ''딥 퍼플 인 록'' 이후 최고의 앨범이라고 평했다.[94]
''롤링 스톤''의 크리스 니콜슨은 이 앨범에 대해 호평하며, 볼린을 전임자보다 더 다재다능한 기타리스트로 칭찬하고, 앨범의 새로운 스타일 방향을 딥 퍼플에게 완벽한 영토 개척으로 평가했다. 니콜슨에 따르면, 볼린의 도움으로 딥 퍼플은 이전 앨범의 예측 가능성을 벗어나 볼륨 대신 멜로디와 다이내믹스에 의존하게 되었다. "실험에 대한 분명한 열망은 밴드의 음악을 헤비 메탈 감옥 밖으로 확장시켰다." 니콜슨은 밴드가 ''딥 퍼플 인 록'' 이후 잃어버린 초창기의 진보성을 되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95]
영국 잡지 ''사운즈''(이후 ''클래식 록''으로 발행)는 제프 바튼에 따르면, 볼린이 밴드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오랫동안 음악에서 연주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볼린의 연주는 유연하지만 절제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인상은 딥 퍼플의 이전 앨범보다 더 자유롭고 유쾌하다. 그는 이것이 분명히 "평균 이상의 록 앨범"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바튼은 이것이 밴드의 장수를 보장할 만큼 충분한지 의문을 제기했다.[96]
2010년 35주년 기념판 리뷰에서 BBC 뮤직의 그렉 모핏은 앨범이 "재앙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그 자체로 보면"이라고 반응하며, 라인업이 완전히 "완전히 다른 짐승으로 [...]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또한 이 앨범이 힘이 부족하고 "너무 편안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긍정적인 반응으로 마무리하면서, 과거에 TNT가 있었던 곳에 "무해한 작은 불꽃"이 있다고 말했다.[97]
''서커스''는 이 앨범을 록 음악계의 "정신적 전위"에 관한 컨셉 앨범으로 평했다. 좀 더 부정적인 시각으로, 영국 잡지 ''스트리트 라이프''에 글을 기고한 스티브 피콕은 틀에 박힌 곡들과 "진부한" 가사를 비판했다.[98]
7. 2. 앨범의 영향과 유산
최근 몇 년 동안, ''Come Taste the Band''는 토미 볼린의 앨범 기여에 힘입어, 롤링 스톤이나 BBC 뮤직과 같은 언론 매체로부터 광범위한 찬사를 받으며 "그 자체의 가치"로 재평가받았다.[89][90]이안 길런은 이 앨범을 진정한 딥 퍼플 앨범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91] 리치 블랙모어는 이 앨범에 대한 질문에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볼린을 기타리스트로서 칭찬했다.[92] 존 로드는 몇 년 후 인터뷰에서 이 앨범의 퀄리티를 칭찬하며, "지금 들어보면 놀라울 정도로 좋은 앨범"이라고 말하는 한편, "가장 안 좋은 점은, 그렇게 나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딥 퍼플 앨범 같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인정했다.[93]
데이브 톰슨은 "열광적인 평을 받지 못했고, 약한 곡도 없었으며, 나쁜 앨범도 아니었지만... 딥 퍼플처럼 들리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38] 그러나 전문 비평가들의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Fanfare''는 ''Come Taste the Band''를 ''머신 헤드''와 ''딥 퍼플 인 록'' 이후 최고의 앨범이라고 평했다.[94]
''롤링 스톤''의 크리스 니콜슨은 이 앨범에 대해 호평하며, 볼린을 전임자보다 더 다재다능한 기타리스트로 칭찬하고, 앨범의 새로운 스타일 방향을 딥 퍼플에게 완벽한 영토 개척으로 평가했다. 니콜슨에 따르면, 볼린의 도움으로 딥 퍼플은 이전 앨범의 예측 가능성을 벗어나 볼륨 대신 멜로디와 다이내믹스에 의존하게 되었다. 그는 "실험에 대한 분명한 열망은 밴드의 음악을 헤비 메탈 감옥 밖으로 확장시켰다"라고 하며, 밴드가 ''딥 퍼플 인 록'' 이후 잃어버린 초창기의 진보성을 되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95]
영국 잡지 ''사운즈''(이후 ''클래식 록''으로 발행)의 제프 바튼은, 볼린이 밴드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오랫동안 음악에서 연주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볼린의 연주는 유연하지만 절제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인상은 딥 퍼플의 이전 앨범보다 더 자유롭고 유쾌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것이 분명히 "평균 이상의 록 앨범"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바튼은 이것이 밴드의 장수를 보장할 만큼 충분한지 의문을 제기했다.[96]
2010년 35주년 기념판 리뷰에서 BBC 뮤직의 그렉 모핏은 앨범이 "재앙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그 자체로 보면"이라고 반응하며, 라인업이 "완전히 다른 짐승으로 [...]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또한 이 앨범이 힘이 부족하고 "너무 편안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긍정적인 반응으로 마무리하면서, 과거에 TNT가 있었던 곳에 "무해한 작은 불꽃"이 있다고 말했다.[97]
''서커스''는 이 앨범을 록 음악계의 "정신적 전위"에 관한 컨셉 앨범으로 평했다. 좀 더 부정적인 시각으로, 영국 잡지 ''스트리트 라이프''에 글을 기고한 스티브 피콕은 틀에 박힌 곡들과 "진부한" 가사를 비판했다.[98]
8. 곡 목록
1975년 10월 25일 발매된 2-CD 디럭스 35주년 기념 에디션에는 리마스터링된 오리지널 앨범과 "You Keep On Moving"의 희귀 미국 싱글 편집본, 케빈 셜리가 제작한 전체 앨범 리믹스, 미발표 트랙 2곡("Same in LA", 토미 볼린과 이언 페이스의 기악 잼 "Bolin/Paice Jam")이 포함되어 있다.[43]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모든 리드 보컬을 맡았다(별도 표기 외).
8. 1. 오리지널 LP
사이드 1 | |||
---|---|---|---|
곡명 | 작곡 | 리드 보컬 | 재생 시간 |
Comin' Home | 토미 볼린, 데이비드 커버데일, 이언 페이스 | 데이비드 커버데일 | 3:55 |
Lady Luck | 제프 쿡, 데이비드 커버데일 | 데이비드 커버데일 | 2:48 |
Gettin' Tighter | 토미 볼린, 글렌 휴즈 | 글렌 휴즈 | 3:37 |
Dealer | 토미 볼린, 데이비드 커버데일 | 데이비드 커버데일, 토미 볼린 | 3:50 |
I Need Love | 토미 볼린, 데이비드 커버데일 | 데이비드 커버데일 | 4:23 |
사이드 2 | |||
곡명 | 작곡 | 리드 보컬 | 재생 시간 |
Drifter | 토미 볼린, 데이비드 커버데일 | 데이비드 커버데일 | 4:02 |
Love Child | 토미 볼린, 데이비드 커버데일 | 데이비드 커버데일 | 3:08 |
This Time Around / Owed to 'G' | 글렌 휴즈, 존 로드 / 토미 볼린 | 글렌 휴즈 / 기악 | 6:10 |
You Keep On Moving | 데이비드 커버데일, 글렌 휴즈 | 데이비드 커버데일, 글렌 휴즈 | 5:19 |
8. 2. 35주년 기념 에디션
2010년 10월 25일에 발매된 2-CD 디럭스 35주년 기념 에디션에는 리마스터링된 오리지널 앨범과 "You Keep On Moving"의 희귀한 미국 싱글 편집본(보너스 트랙)이 첫 번째 디스크에, 케빈 셜리가 제작한 전체 앨범 리믹스와 미발표 트랙 2곡이 두 번째 디스크에 포함되어 있다. 미발표 트랙은 1975년 최종 발매에서 제외된 3분 분량의 "Same in LA"와 토미 볼린과 이안 페이스의 5분 분량의 기악 잼인 "Bolin/Paice Jam"이다.[43]데이비드 커버데일이 모든 리드 보컬을 맡았으며, 특별히 언급된 경우는 예외이다.
디스크 1: 오리지널 앨범 리마스터 | ||
---|---|---|
1. | Comin' Home | 3:54 |
2. | Lady Luck | 2:48 |
3. | Gettin' Tighter | 3:36 |
4. | Dealer | 3:53 |
5. | I Need Love | 4:24 |
6. | Drifter | 4:05 |
7. | Love Child | 3:07 |
8. | This Time Around / Owed to 'G' | 6:13 |
9. | You Keep On Moving | 5:22 |
10. | You Keep On Moving (싱글 편집) (보너스 트랙) | 4:32 |
디스크 2: 2010 리믹스 | |||
---|---|---|---|
1. | Comin' Home | 4:08 | |
2. | Lady Luck | 2:46 | |
3. | Gettin' Tighter | 4:23 | |
4. | Dealer | 3:55 | |
5. | I Need Love | 5:16 | |
6. | You Keep On Moving | 5:18 | |
7. | Love Child | 3:05 | |
8. | This Time Around | 3:24 | |
9. | Owed to 'G' | 2:56 | |
10. | Drifter | 3:59 | |
11. | Same in LA (이전에 공개되지 않음) | 3:19 | |
12. | Bolin/Paice Jam (이전에 공개되지 않음) | 5:47 |
9. 참여 인물
《Come Taste the Band》 음반 제작에는 딥 퍼플 멤버들과 기타 외부 인물들이 참여했다.
딥 퍼플 멤버 | 기타 참여 인물 |
---|---|
9. 1. 딥 퍼플 멤버
- 데이비드 커버데일 – 리드 보컬, 백 보컬
- 토미 볼린 – 리드 기타, 어쿠스틱 기타, 백 보컬, 베이스 기타 (1번 트랙), 공동 리드 보컬 (4번 트랙)
- 존 로드 – 키보드, 피아노, 신시사이저
- 글렌 휴즈 – 베이스 기타, 공동 보컬 (1번 트랙 제외), 리드 보컬 (3 & 8번 트랙)
- 이안 페이스 – 드럼[22]
9. 2. 프로덕션 스태프
- 제작: 마틴 "더 와스프" 버치 & 딥 퍼플[22]
- 엔지니어: 마틴 버치[22]
- 최종 믹싱: 마틴 버치 & 이안 페이스[22]
- 커버 사진: 피터 윌리엄스[22]
- 리마스터링: 데이브 슐츠 & 빌 잉글롯 (로스앤젤레스 디지프렙)[22]
- 2010년 리믹스: 케빈 셜리 (캘리포니아 말리부 더 케이브)[22]
- 마스터링: 밥 루드비히[22]
10. 차트 성적
차트 (1975-1976) | 최고 순위 |
---|---|
오스트레일리아 앨범 (켄트 뮤직 리포트)[100] | 11 |
덴마크 앨범 (히틀리센)[101] | 18 |
네덜란드 앨범 | 12 |
독일 앨범 | 29 |
이탈리아 앨범 (무지카 에 디스키)[102] | 7 |
일본 앨범 (오리콘)[103] | 14 |
뉴질랜드 앨범 | 6 |
노르웨이 앨범 | 6 |
스페인 앨범 (AFYVE)[104] | 17 |
스웨덴 앨범 | 16 |
영국 앨범 | 19 |
미국 빌보드 200 | 43 |
11. 인증
참조
[1]
서적
The Deep Purple Family
Wymer Publishing
[2]
간행물
Come Taste the Band
https://www.rollings[...]
[3]
서적
The Road of Golden Dust
Wymer Publishing
[4]
서적
The Deep Purple Family
Wymer Publishing
[5]
문서
Järvinen 2018, p. 203.
[6]
문서
Heino 2004, p. 13, 21, 38–40; Järvinen 2018, s. 247, 265–266, 270.
[7]
문서
Bloom 2009, p. 211, 219–220; Järvinen 2018, p. 246, 270.
[8]
문서
Heino 2004, p. 47–52; Järvinen 2018, p. 266, 270–273.
[9]
웹사이트
WHEN TOMMY BOLIN JOINED DEEP PURPLE "HE WAS A SIGHT TO BEHOLD, THIS EXOTIC CREATURE"
https://bravewords.c[...]
2024-01-05
[10]
문서
Järvinen 2018, p. 272–273.
[11]
문서
Heino 2004, p. 51–52.
[12]
웹사이트
WHEN TOMMY BOLIN JOINED DEEP PURPLE "HE WAS A SIGHT TO BEHOLD, THIS EXOTIC CREATURE"
https://bravewords.c[...]
2024-01-05
[13]
문서
Charlesworth 1983, June 1975.
[14]
문서
Järvinen 2018, p. 275.
[15]
문서
Järvinen 2018, p. 275, 281.
[16]
문서
Järvinen 2018, p. 270.
[17]
문서
Heino 2004, p. 52–53.
[18]
문서
Kean 2007, p. 4.
[19]
문서
Heino 2004, p. 57.
[20]
문서
Bloom 2009, p. 236–237; Järvinen 2018, p. 277.
[21]
문서
Heino 2004, p. 53–54.
[22]
booklet
Come Taste the Band
Purple, Warner Bros.
1975
[23]
문서
Järvinen 2018, s. 276–278; Heino 2004, p. 54–55.
[24]
문서
Heino 2004, p. 54–56.
[25]
문서
Casey 2010, p. 9.
[26]
웹사이트
Tommy Bolin: the story of a doomed genius
https://www.louderso[...]
Louder
2020-11-17
[27]
문서
Heino 2004, p. 54–56; Casey 2010, s. 14; Järvinen 2018, p. 278–280.
[28]
문서
Casey 2010, p. 18.
[29]
문서
Heino 2004, p. 54; Casey 2010, p. 14.
[30]
문서
Casey 2010, p. 23.
[31]
문서
Järvinen 2018, p. 282.
[32]
문서
Heino 2004, p. 48.
[33]
웹사이트
Deep Purple: Come Taste The Band : Music Reviews
http://www.rollingst[...]
Rolling Stone
2024-01-05
[34]
문서
Heino 2004, p. 55.
[35]
문서
Thompson 2013, p. 220.
[36]
서적
Heino 2004, p. 55
[37]
서적
Heino 2004, s. 118
[38]
서적
Thompson 2013, p. 223
[39]
웹사이트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https://www.sputnikm[...]
2010-05-13
[40]
서적
Heino 2004, p. 55–56
[41]
서적
Casey 2010, p. 11
[42]
서적
Casey 2010, p. 17
[43]
웹사이트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35th Anniversary Due in October; Details Available
http://www.braveword[...]
Brave Words & Bloody Knuckles
2010-09-06
[44]
서적
Järvinen 2018, p. 283
[45]
서적
Viinilaseja tarvittiin lopulta kaksi, sillä ensimmäiseen albumin nimi oli kirjoitettu väärin ”Come & Taste The Band”. Casey 2010, p. 16–17
[46]
서적
The Deep Purple Family
Wymer Publishing
[47]
서적
Thompson 2013, p. 222–224
[48]
웹사이트
Come Taste the Band - Deep Purple - Official Charts
https://www.official[...]
Official Charts Company
2024-01-05
[49]
웹사이트
Deep Purple Official Charts
http://www.officialc[...]
Official Charts Company
2017-02-05
[50]
간행물
Deep Purple Chart History: Billboard 200
http://www.billboard[...]
2017-02-05
[51]
웹사이트
BPI Certified Awards Database: search for Artist Deep Purple
https://web.archive.[...]
British Phonographic Industry
2017-02-21
[52]
서적
Kean 2007, p. 5
[53]
서적
Järvinen 2018, p. 293
[54]
서적
Järvinen 2018, p. 287–288
[55]
서적
Heino 2004, p. 57–58
[56]
서적
Järvinen 2018, p. 287–288: Heino 2004, p. 57–58; Charlesworth 1983 (Mark IV June 1975 to April 1976)
[57]
서적
Järvinen 2018, p. 280
[58]
서적
Casey 2010, p. 17–18
[59]
서적
Thompson 2013, p. 225
[60]
서적
Järvinen 2018, p. 287, 295
[61]
서적
Järvinen 2018, p. 287–288: Heino 2004, p. 57–58
[62]
서적
Järvinen 2018, p. 287
[63]
서적
Deep Purple: The Illustrated Biography
Omnibus Press
1983
[64]
서적
Järvinen 2018, p. 288–291; Heino 2004, p. 58–59
[65]
웹사이트
"It appeared that he had fallen down an elevator shaft, but we knew that he was murdered": the traumatic story of Deep Purple's visit to Indonesia in 1975
https://www.louderso[...]
Classic Rock
2024-01-06
[66]
서적
Charlesworth (Mark IV June 1975 to April 1976)
[67]
서적
Heino 2004, p. 59–60
[68]
서적
Heino 2004, p. 60–61
[69]
서적
Järvinen 2018, p. 294
[70]
서적
Black Knight: Ritchie Blackmore
https://books.google[...]
Omnibus Press
2011-10-23
[71]
문서
Järvinen 2018, p. 294–295; Heino 2004, p. 61–62
[72]
서적
Smoke on the Water: The Deep Purple Story
https://books.google[...]
2011-10-23
[73]
문서
Heino 2004, p. 38, 61–62
[74]
문서
Thompson 2013, p. 232
[75]
서적
The Guinness Who's Who of Heavy Metal
Guinness Publishing
1995
[76]
웹사이트
Archived copy
http://www.tbolin.co[...]
2013-02-18
[77]
웹사이트
SHOOTING STAR
https://www.angelfir[...]
2019-11-12
[78]
서적
Knocking on Heaven's Door: Rock Obituaries
https://books.google[...]
Omnibus Press
2006
[79]
간행물
Deep Purple: 'Surprise Of The Year'
https://books.google[...]
Billboard
1985-05-18
[80]
서적
Legends of rock guitar: the essential reference of rock's greatest guitarists
https://books.google[...]
Hal Leonard Corporation
1997
[81]
웹사이트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review
http://www.allmusic.[...]
All Media Network
2017-02-21
[82]
웹사이트
Deep Purple Come Taste the Band: 35th Anniversary Edition Review
https://www.bbc.co.u[...]
BBC Music
2010-02-21
[83]
잡지
Music Review: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http://blogcritics.o[...]
2011-12-06
[84]
웹사이트
Album Of The Week Club Review: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https://www.louderso[...]
Classic Rock
2018-05-14
[85]
웹사이트
Julian Cope Presents Head Heritage - Unsung - Reviews - Deep Purple: Come Taste the Band
https://www.headheri[...]
Head Heritage
1976-11-24
[86]
잡지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https://www.rollings[...]
1976-02-12
[87]
잡지
The Original Purple Power
1990-10
[88]
웹사이트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https://www.sputnikm[...]
2010-05-13
[89]
웹사이트
Album Of The Week Club Review: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https://www.louderso[...]
loudersound.com
2018-05-14
[90]
웹사이트
Deep Purple Come Taste the Band: 35th Anniversary Edition Review
https://www.bbc.co.u[...]
BBC
[91]
뉴스
Gillan Has 'No Interest' In Deep Purple Mk III, Says Glenn Hughes Is 'Copying Stevie Wonder'
http://www.blabbermo[...]
2009-01-15
[92]
웹사이트
Ritchie Blackmore Interview on Melbourne Radio November 21 1976 mp3
https://www.youtube.[...]
[93]
Youtube
Deep Purple "Come Taste the Band" Documentary
https://www.youtube.[...]
YouTube
2014-10-20
[94]
문서
Casey 2010, p. 2
[95]
잡지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https://www.rollings[...]
1976-02-12
[96]
웹사이트
Deep Purple: Exit The Man In Black...
https://www.louderso[...]
[97]
웹사이트
Deep Purple Come Taste the Band: 35th Anniversary Edition Review
https://www.bbc.co.u[...]
BBC Music
2010
[98]
문서
Järvinen 2018, p. 281–283
[99]
잡지
Single Picks
https://worldradiohi[...]
1976-02-21
[100]
서적
Australian Chart Book 1970–1992
Australian Chart Book
[101]
웹사이트
Danske Hitliter: Come Taste the Band - Deep Purple
http://danskehitlist[...]
Royal Library, Denmark
[102]
웹사이트
Classifiche
http://www.musicaedi[...]
[103]
서적
Oricon Album Chart Book: Complete Edition 1970–2005
Oricon Entertainment
[104]
서적
Sólo éxitos: año a año, 1959–2002
Fundación Autor-SGAE
[105]
잡지
Czech Gold
https://books.google[...]
1979-11-17
[106]
서적
オリコンチャート・ブックLP編(昭和45年‐平成1年)
オリジナルコンフィデンス
1990
[107]
웹사이트
ChartArchive - Deep Purple
http://chartarchive.[...]
[108]
웹사이트
Deep Purple - Awards : AllMusic
http://www.allmusic.[...]
[109]
문서
[110]
문서
[111]
문서
[112]
웹사이트
Discogs
https://www.discogs.[...]
2023-11-25
[113]
문서
[114]
Allmusic
Allmusic review
https://www.allmusic[...]
[115]
웹사이트
Rolling Stone review
http://www.rollingst[...]
[116]
웹사이트
http://www.sputnikmu[...]
[117]
웹사이트
BPI certified awards-Silver
http://www.bpi.co.uk[...]
2009-02-21
[118]
문서
[119]
웹사이트
Gillan Has 'No Interest' In Deep Purple Mk III, Says Glenn Hughes Is 'Copying Stevie Wonder'
http://www.roadrunne[...]
2010-10-24
[120]
문서
[121]
웹사이트
Deep Purple, Come Taste The Band
http://www.deep-purp[...]
Deep-purple.net
2012-02-10
[122]
웹사이트
News >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35th Anniversary Due In October; Details Available
http://www.braveword[...]
Bravewords.com
2012-02-10
[123]
문서
[124]
웹사이트
thehighwaystar.com
https://www.thehighw[...]
2023-11-25
[125]
문서
[126]
문서
[127]
문서
[128]
문서
[129]
문서
[130]
웹사이트
thehighwaystar.com
https://www.thehighw[...]
2023-11-27
[131]
문서
[132]
문서
[133]
웹사이트
thehighwaystar.com
https://www.thehighw[...]
2023-11-26
[134]
웹사이트
thehighwaystar.com
https://www.thehighw[...]
2023-11-26
[135]
문서
[136]
문서
[137]
웹사이트
Come taste the Band on European Charts 1975
http://austrianchart[...]
2012-10-24
[138]
웹사이트
The Official Charts Company - Come Taste the Band
http://www.theoffici[...]
The Official Charts Company
2013-05-05
[139]
웹사이트
Come taste the Band on ''Billboard''
http://www.allmusic.[...]
"[[Rovi Corporation]] / ''[[Billboard (magazine)|Billboard]]''"
2012-10-24
[140]
웹인용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review
http://www.allmusic.[...]
"[[All Media Network]]"
2017-02-21
[141]
웹인용
Deep Purple Come Taste the Band: 35th Anniversary Edition Review
https://www.bbc.co.u[...]
BBC Music
2010
[142]
잡지
Music Review: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http://blogcritics.o[...]
2017-02-21
[143]
잡지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https://www.rollings[...]
2017-02-21
[144]
웹인용
Deep Purple - Come Taste the Band
https://www.sputnikm[...]
2017-02-21
[145]
잡지
Jon Lord's Purple Reign
http://www.thehighwa[...]
2017-02-21
[146]
서적
Australian Chart Book 1970–1992
Australian Chart Book
[147]
잡지
Czech Gold
https://books.google[...]
2020-03-1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